2011.1.26
작년 12월 후반부터 시작된 추위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나의 외출길(주로 출근길)은 철저한 방어자세와 함께 시작된다. 마치 누가 나를 해하기로 작정했다는 듯 상상의 위협에 나는 온 몸을 고슴도치처럼 잔뜩 말고 가시처럼 신경을 날카롭게 세운다. 이런 외출길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은 최근 방학 기간 중이라 교통 체증이 훨씬 덜해졌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버스 승차 인원도 방학 이전 시기에 비해 최소 1/3 이상은 감소한 것 같다. 내가 사는 집 주변에는 여러 큰 대학교들이 있는데, 이 학교들에 다니는 학생 수가 정말 많긴 한가보다를 요새 체감하고 있다. 덕분에 가끔은 (그렇더라도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자주) 버스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지 않고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좌석에 앉아 갈 수도 있게 되었고, 사람들로 꽉찬 버스에서 앞 사람들의 뒷통수나 어깨만을 바라보며 가거나 운이 좋아 앉더라도 사람들의 배만이 눈 앞을 가득 채우던 답답한 시야에서 벗어나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오늘처럼 추운 날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버스를 금방 타고 게다가 운까지 좋아 빈 좌석에 앉게 되면 겨울이라 낮게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은 저절로 감긴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태양의 온기를 느끼는데, 따사로움이 그 어느 외투보다 포근하게 느껴진다. 문득 어릴 때 읽었던 해와 바람의 내기에 대한 동화가 생각난다. 길 가던 한 남자의 외투 벗기기 내기를 했던 해와 바람의 이야기. 바람의 거친 공격보다는 해의 온화함이 결국 이겼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너무 추운 까닭인지 햇살 따뜻한 버스에 앉아 있더라도 외투를 벗게 되지는 않는다. 4월 즈음이면 가능할 법한 이야기겠지만 그때에는 버스 안에서 내게 외투를 벗을 수 있을 만한 공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