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g by Colm Wilkinson
1993년에 롯데월드에 위치한 롯데예술극장에서 국내 연기자들로만 이루어진 레미제라블 공연이 있었다. 이 때 남경주씨가 마리우스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담이지만 그는 이후 한동안 팬들을 몰고 다니는 뮤지컬계의 신성역을 담당하였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만 집과 학교 주변(그러니 이대와 연대 주변 지역)을 벗어난 적 없던 나에게 잠실이라는 곳은 너무도 멀고 무서운 곳이었다. 그래서 차마 공연은 보러가지 못하고 음반(음반이래봐야 카셋트 테이프)을 사서 몇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모든 노래들을 외워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들을 때마다 음악이 너무 좋아 가슴이 미어지며 눈물이 차 오르곤했다. 그 때까지 클래식 피아노만을 쳤던 나에게 뮤지컬 음악도 이렇게 품격있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한 음반이었다.
얼굴 붉히며 하는 이야기지만 당시 나는 짐짓 어른인 척하곤 했다. 풋내나는 어린 티가 나에게서 가급적 빨리 그리고 멀리 달아나주기를 바랐다. 또래 고등학생의 어설픔과 서투름, 유치함을 참아내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시시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내가 설정해 놓았던 '고급 지식인', '의식있는 지식인'의 이미지를 열망했던 것이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같은 책들을 읽으며 괜히 혼자 심각해하기도 했고 게리 무어와 김광석의 음악을 열심히 듣기도 했다. 조금 변명하자면 싫어하는데 부러 좋아하는 척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그 책들과 음악들을 좋아하긴 했었다. 어찌되었든 또래 친구들이 서태지에 열광할 때 나는 쇼팽을 들으며 혼자 음흉하게 흡족해 하던 때도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그 지적 허영심 덕분에 십대 후반의 내가 십대 고유의 서투름과 유치함을 제대로 경험하며 감당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두고두고 애석한 결핍으로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이는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유치하고 서툴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80년대 학번의 언니가 나를 종종 자신과 같은 386세대로 착각하게 된다는 '영광스러운' 코멘트를 훈장처럼 달고 있는 다소 구닥다리같은 취향을 갖고 있는 70년대생 90년대 학번인 나의 어린 시절을 아련하고도 복잡한 심경으로 돌아보게 한 이 음반 중에서 나는 몇몇 노래들을 진심으로 편애했는데, Bring him home도 그 중 하나였다. 애절하면서도 처연하고 비장하기까지한 이 기도하는 노래를 들으니 그 시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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