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side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_ 김연수

까만머리 앤 2011. 1. 11. 11:06

 

세계의 끝_ 그 끝이 열리는 순간

 

어렸을 때 나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 세상과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넓어져 타인에 대해 보다 관대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이가 들면 그러한 포용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가졌었다. 그렇지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지나온 세월의 양이 늘어날 수록 결국 자기 자신만이 보다 더 강해지고 견고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각자 자신의 장소에서 자신의 언어로 본인의 이야기만을 목이 터져라 외쳐대느라 옆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는 도통 관심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저 저마다 자신의 사정만이 가장 중요하고 심각하며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타인을 향해 조금도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때부터 나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소설들을 읽으면서 늘 머리 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굳이 들추고 싶지 않았던 이 오래된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소설들은 내가 지닌 의문과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같아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의 소설가와 혜미,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여고생과 세상,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남자 주인공과 난아,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의 주인공 ‘나’와 이종현, 「모두에게 복된 새해」의 ‘나’ 와 나의 아내 혜진 그리고 '나'와 사트비르 싱,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고부장과 세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주인공 미아와 남편,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의 리선생과 알렉스, 그리고 ‘나’, 「달로 간 코미디언」의 안미선과 ‘나’ 사이에는 서로 닿지 못할 거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소통은 미끄러지고 엇나간다. 이들은 모두 타인(들)과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 떨어져있고, 그(들)로부터 자신의 상처, 아픔, 고통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받지 못해 외로운 개인들이다.  

 

  김연수의 소설이 이들 사이에 자리한 거리로 인해 소통이 부재하며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데에서 그쳐버렸다면 아마도 그의 소설은 상당히 식상하고 삭막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는 단절된 소통을 뛰어넘는, 따뜻한 희망을 갖게 하는 무언인가가 존재한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소설가와 한국어가 모국어인 혜미가 ‘nak’과 ‘하이퍼바이터미노우시스에이’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단어들을 각자 안고 있는 삶의 상처 속에서 미루어 짐작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며 소통을 이룰 수 있었던 순간처럼 말이다. 「모두에게 복된 새해」의 주인공의 아내와 사트비르 싱의 경우에도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두 언어의 간극을 뛰어넘어 그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에 도달하고 이는 아내 혜진과 남편의 소통을 매개하는 데에까지 이르른다.

 

  서로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존재하는 우리들은 그래서 외롭지만 세계의 끝에서 홀로 위태롭게 서있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진심과 사랑이 있다.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지금, 보이세요?”라는 그녀의 질문에 주인공이 만월을 보게 되었던 것처럼, 김연수의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통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음을 그래서 언젠가는 서로 시선을 마주하며 온전히 상대를 바라볼 수 있음을 암시해주기 때문에 절망적이지 않다. 나의 세계의 끝은 끝이 아니라 그 곳에서 나와 함께 공명해 줄 누군가와 만남으로써 새로이 열리게 되는 지점이며, 그 순간 그 세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곳이 될 것이다.


2009년 11월 6일에 썼던 글을 다시 옮겨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