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년전부터 통영국제음악제에 꼭 가보고 싶었다. 올해에는 꼭 가리라 친구와 약속하고 미리부터 연주회 표를 예매해두었다. 그런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상을 받게 되어 시상식 참석 차 이태리로 가야하는 바람에 혼자 가느냐 마느냐하는 고민을 잠시했었다.
혼자라도 꼭 가보고 싶었다. 유난히 춥고 지루했던 겨울의 부스러기들을 빨리 떨궈내고 봄을 하루라도 먼저 맞이해보고 싶기도 했고, 둘이어서 좋을 수 있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좋을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니 말이다. 혼자 가는 여행의 좋은 점은 불필요하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나의 템포에 맞추어서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는 것.
나에게는 한가지 여행 수칙이 있는데, 사진찍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이다. 사진을 찍는 것과 찍히는 것 모두와 그리 친숙하지 않은 데다가, 지금 여기서 내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지는 모든 것들에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가끔 자신이 보는 모든 것과 모든 순간을 카메라로 담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좋으니 담아두려는 것이겠지만 때로는 본말이 전도되어 그저 카메라로 보기 위해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아 딱해 보이기도 한다. 2박 3일의 여행동안 많은 사진들을 찍지는 않았지만 훗날의 추억하기를 위해 몇장 간직해두려 한다.
통영 터미널에 도착하고 숙소에 짐을 푼 후, 미리 봐두었던 해안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시작하기로 한다. 생수 한 병과 아이팟을 들고 출발지점을 향해 가는 길에서. 이 날에는 요트 훈련을 받는 학생들이 많았다.
산책길로 접어든지 얼마 안되어 만난 고양이이다. 들고양이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유기묘인 듯 했는데, 배가 고픈지 주인을 찾는 것인지 너무나 애처롭게 울어 애잔한 마음에 함께 햇볕을 쬐며 한참을 서 있었다.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수 한병 뿐이었는데, 가방을 뒤져 겨우 찾아낸 납작해진 빵굼터 소보로 빵을 뜯어 그에게 좀 주었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인지 허겁지겁 먹는다. 고양이가 빵을 먹어도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잘 몰라 일단 1/4쪽만 주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쓰레기를 뒤져 먹을 바에야 차라리 빵이 낫겠지 싶어, 돌아 오는 길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면 남은 빵을 더 주기로 약속하고 그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배회하며 울고 있어 또 한참을 같이 서 있다가 남은 빵을 모두 주고 왔다.)
해안의 가장자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로.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많이 짜지 않은 바다내음 그리고 한적한 산책길, 콜드플레이의 음악. 상콤한 시간이었다.
이날의 하늘과 햇살, 냄새, 부드러운 공기를 기억하도록 한다.
산책길에서 본 바다, 배, 섬들
산책길에 접어든 어촌의 풍경.
멍게 수확 작업이 한창이다. 선명한 주황색의 멍게와 파란빛의 바다가 아름다웠다.
멍게비빔밥을 먹어보았는데, 입안 가득한 촉촉한 싱싱함에 놀랐다.
아침 일찍 개관시간에 맞추어 찾아간 전혁림미술관.
타일로 예쁘게 디자인한 특색있는 작은 미술관이어서 좋았다. 미술관 마당 옆에 주택이 바로 붙어 있었는데, 들어가는 대문이 예뻤다. 사진으로는 그 낡고 녹슨 색채와 뒷편의 푸른 나무의 느낌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구나.
전날 걸었던 해안 산책로가 너무도 좋았던 터라 점심시간에 무리를 하여 택시를 타고 해안 일주도로를 돌았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달아공원에서 내려다 본 섬들. 손을 뻗으면 마치 잡을 수 있을 듯 가까운 거리를 두고 많은 섬들이 있었다. 일몰시간에 맞추어서 보았으면 훨씬 아름다웠겠지만 저녁에는 연주회가 있어서 낮시간에 찾았다. 낮시간에 보아도 너무나 좋은 풍경이었다. 이번 통영 여행에서 보았던 풍경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사진으로는 역시 그 감동이 살아나지 않는다.
본래 철거 예정지역이었으나 벽화프로젝트 후의 반응이 좋아 계속 살아남게 되었다는 동피랑 마을. 낡은 것을 부시고 새로 짓는 것이 언제나 능사는 아닌 것이다. 동피랑 마을의 가장 꼭대기에서 통영을 내려다 본다.
일요일 밤 마지막 연주회를 보고 내려와 숙소로 가는 길. 수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일요일 밤이라 더없이 한적했다. 통영은 이제서야 제 숨을 좀 쉬는 것 같았다. 밤 바다의 차분함과 빈 어선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 저 멀리 비치는 모텔들의 간판 불빛. 따뜻한 캔 커피 하나를 손에 들고 조용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