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나날이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변해가는데 나는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뒤늦게 그것을 아주 잠깐동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 밤새 갑작스럽게 그 모든 목련꽃들이 피어났던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 무딘 나는 어느 날 아침이 되어서야 목련꽃들이 일순간에 모두 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벚꽃들이 하룻 밤새 다 피어났을리 만무하건만, 나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벚꽃이 만개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게으른 뒤쫓음이고 성의없는 감상인 것이다.
일터가 있는 평창동을 향하던 오늘 눈에 띤 것은 지난 겨울 동안 메말라있던 무채색의 산이 어느덧 몽글몽글 색으로 피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무의 푸른 잎들이 봄비를 맞아가며 더욱 푸르러 가고 있는 중에 이곳저곳 연한 크림빛의 벚꽃들이 비와 바람에도 마지막 남은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고 군락을 이룬 개나리들과 진달래들이 색의 자취를 더해가고 있었다. 총천연색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색'스러운 풍경이었다. 맑게 개인 하늘의 햇살을 향해 기분좋게 흔들거리는 노란빛의 연두잎, 파란 초록잎, 짙은 녹색잎들 위에 벚꽃들이 살포시 내려 앉아 있는 모양새는 마치 산 위로 고운 분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다양한 빛깔의 연두색, 초록색과 연하디 연한 분홍색, 샛노란색, 진한 다홍색, 샛분홍색, 그리고 바위의 무채색 등 도저히 안 어울릴 것 같은 색들이 함께 있는 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자연의 색채의 어울림은 이처럼 언제나 근사하고 어색함이 없고 천연덕스럽다.
오늘 본 산의 분냄새로 아직도 머리가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