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정확치 않다. 벤야민에 대한 강의를 듣는 중에 선생님께서 고통에도 품위를 갖추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께서 "고통"이라는 단어를 쓰셨는지, 혹은 "불행"이라 언급하셨는지, 그것도 아니면 "고난"이라고 하셨는지 조차도 정확치 않은 기억이므로 요지라는 것도 실상은 내 기억의 왜곡을 거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벤야민이 한창 아케이트 프로젝트를 저술할 당시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렇게 발랄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는 말 끝에 나온 말인 듯 싶다.
한 인간의 삶에서나, 한 사회에서나, 한 국가에서나, 어떤 개별적인 일에서나 흔히 고통은 멀리하고 싶은 것이기 쉽상이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있어도 없는 것인양 자꾸 밖으로, 한데로 내몬다. 그러나 있는 것이 절대로 없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고통과의 대면을 피하고자 가급적 의식으로부터 그 고통을 밀어내고 지워내려 하지 않고, 그 고통으로 하여금 품격을 갖추게 하는 것, 고통에 품위을 더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 존재를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고통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길이 될 것이다. 역사의 폐허에서 현재를 구제해 줄 빛나는 무언가를 찾고자 했던 벤야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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